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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론슈타트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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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0년 역병과 무티미르의 찬탈 === 670년 평원에 다시 역병이 돌았다. 블라스티미르와 종사단의 많은 전사가 이 역병으로 죽었고, 아홉 살의 맏아들 고이니크가 어머니 드라가나의 섭정 아래 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고이니크는 이듬해인 671년 갑자기 죽었다. 공식 사인은 역병이었지만, 연대기는 "그의 죽음을 두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고만 적었다. 블라스티미르의 아우 무티미르가 종사단을 이끌고 공작의 자리를 차지했고, 드라가나는 세 살 난 둘째 아들 인터르스키를 데리고 강 굽이의 빌베른 거류지로 달아났다. 무티미르는 빌베른 상인들과의 교역이 끊길 것을 두려워해 거류지를 치지 못했다. 이때 수문지기들의 우두머리인 수문지기장 카샤르는 대수문의 열쇠와 그리핀 인장을 품고 거류지로 함께 달아났다. 열쇠와 인장은 세미라의 자손에게만 물려준다는 혼인 약정이 있었지만, 무티미르 역시 세미라의 증손이었기 때문에 카샤르의 행동은 약정이 아니라 블라스티미르의 적통을 따르겠다는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공국의 운명을 바꾸었다. 무티미르(671~688)는 17년 동안 열쇠 없는 공작으로 다스렸다. 수문지기들은 그를 공작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을 게을리했으며, 무티미르는 칼로 수문 기술자들을 부렸으나 수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680년대에는 중류의 수로가 다시 막히기 시작했고, '목마른 여름'의 공포에서 풀려난 중류 영주들이 잇달아 공납을 끊었다. 공국은 블라스티미르 시대의 절반 남짓한 영역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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